나의 이상형은 웃는 게 예쁜 사람이다.
웃는 게 예뻐서 더 웃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었다.
그 웃는 모습을 보면 나의 모든 게 힐링이었다.
그래서 나의 이상형을 바꾼 이 여인이 나에게 다가왔을 때 주체하지 못할 만큼 행복했었다.
인연이란.
그 여인을 만나며 불면증이 나을 만큼 너무나도 따뜻했다.
이 사람이라면 마음만큼 다가가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.
아이러니하게도 마음만큼 다가가니 상대가 먼저 지쳐버렸다.
"반만 사랑할걸."
그 반도 잘못이란 말을 들었었다.
"너는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안되어 있는 거 같아."
우리가 헤어지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나에게 내면 아이를 해보라고 추천을 해준 적이 있었다.
그 아이를 어르고 달래주고 안아줘야 다음이 생길 거라고.
나는 나의 어린아이에게 너무나도 모진 말들만 내뱉었었다.
그 아이는 나에게 우리는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아프다고 이야기하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고 기대지 않았다.
그러면 우리 부모님이 아파하기에 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를 했었다.
사랑은 “함께 만들어가는 관계”로만 느낀 게 아니라,
어쩌면 한동안은 살아남게 해주는 온기로도 느꼈던 것 같다.
그러니까 그 사람이 소중했던 만큼,
그 사람을 잃는 건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
내 안의 평온과 안식처가 무너지는 일이었다.
상대가 늦게 답할 때
버려진 느낌이 드는지,
상대가 지칠 때
내 존재 전체가 부정당한 것처럼 느껴지는지,
사랑받는 순간
기쁜 동시에 잃을까 봐 더 무서워지는지.
이런 것들은 사랑의 크기보다
내면의 상처와 더 연결돼 있는 경우가 많았다.
내가 부족했다는 말도, 완전히 틀리진 않지만
그 말을 칼처럼 들고 계속 나를 찌르고 있었다.
다만 진심만으로는 관계가 유지되지 않고,
진심 위에 안정감, 경계, 자기 위로, 기다릴 수 있는 힘이 같이 있어야
사랑이 숨을 쉴 수 있다는 걸 이번 사랑이 너무 아프게 가르쳐준 것 같다.
인연이란 아무리 슬프고 싫어도 헤어질 관계였고 그 속에서 더 많은 성장을 이루는 것이 인연이지 않을까 싶다.
우리 아버지의 말씀처럼,
우리의 끝은 나는 너에게 사랑이란 믿음을 주지 못했었다.
나의 모든 최선들은 마음이 아프게도 너를 위한 최선이 닿지 않았다.
그 속에서도 나는 너무나도 부족했었다.